화산리 K 주택(Hwasan-ri K Residence) :: 2006. 3. 4. 00:24

건물개요

  • 건축물명 : 화산리 K 주택(Hwasan-ri K Residence)
  • 공사분류 : 신축
  • 설계자 : 이안 l 중국 청화대학교 건축학원
  •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
  • 설계년도 : 2004.08
  • 시설분류 : 단독주택
  • 대지면적 : 1,000㎡
  • 건축면적 : 145.72㎡
  • 연면적 : 196.12㎡
  • 건폐율 : 14.57%
  • 용적율 : 19.61%

상세정보

  • 지상규모 : 3층
  • 지하규모 : 1층
  • 구조형식
    • 지하 - 철근콘크리트조
    • 지상 - 목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독립기초
  • 외부마감
    • 지하 1층 - 황토 5㎝ 마감
    • 지상 2, 3층 - 나무 위 스테인 마감
  • 내부마감 황토마감 위 일부 한지 마감

설명 & 평

중첩된 역사 축에 설정된 집 이야기
어느 날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이내 반가웠다. 총각시절 지독한 술친구였던 김 박사는 집을 설계하고자 하였고 그 방법을 의논하고자 하였다. 의논하기 위하여 만난 자리에서 그 친구가 나한테 설계를 의뢰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베이징에 기거를 하고 있던 터라, 거절의 말을 먼저 권하였으나 이는 이내 무시되고 중국 베이징과 경기도 화성 사이를 인터넷을 통한 최첨단의 국제작업(?)이 시작되었다. 건축물에 대한 계획과 디자인 디테일 작업을 중국에서 보내면 제자였던 신동우 군이 한국에서 도면과 모형작업을 담당하였다. 착공이 되면서부터는 현장사진이 첨부된 보고서가 매일 한국으로부터 송부가 되었고, 나는 중국에서 이를 검토하고 지적 사항을 지시하는 작업을 반복하게 되었다. 물론 한 달에 한번 있는 귀국길이면 화성 현장으로 제일 먼저 발길을 옮기기에 바빴다.

집의 역사성과 시공간
처음 대지를 갔을 적에 재미있는 역사의 축을 알게 되었다. 이 대지 일대는 김 박사 집안의 조상대대로 전해지는 터전이자, 부모님께서 그 동안 기거하시던 비교적 규모가 큰 함석지붕의 전형적인 농가주택이 이웃하여 있기도 하다. 원래 김 박사가 원하던 터는 구릉지 밑에 위치하였으나, 그 상단부분의 편평한 장소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 현재의 집이 앉혀진 이곳은 삼국시대에 중국 사신이 화성을 통하여 들어오게 되면 묵었던 터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시공간이 중첩되는 설계작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김 박사와 나는 근대기의 한국역사를 전공하는 인연도 있기 때문인지 역사적인 현상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도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였다. 처음에 고민되었던 '시공간이 중첩된 공간'이 완벽하게 실현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지의 역사적인 흔적을 근거로 만들고 싶었던 욕심은 여기저기 미약하나마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중첩된 역사'는 시지각적 공간개념을 다양하게 설정하여 표현하려 했다. 대지 건너편에 있는 500여 년 이상 된 은행나무, 대지 뒤를 감싸서 땅의 기운들을 지켜주는 듯한 소나무 숲, 멀리서 불어오는 황해 바다의 비릿한 소금기, 밤톨같이 생긴 조그마한 야산과 그를 감싸 돌고 있는 오솔길 등이 이 대지의 역사적인 축을 만들고 있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1, 2층의 거실, 지하 1층의 사랑방, 1층 안방과 2층에 있는 두 개의 방들, 그리고 부엌과 식당 등의 내부공간으로 유인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지하 1층의 안방과 거실은 기존에 김 박사의 부모님께서 기거하시던 주택과의 시각적 연계, 1층 안방과 후방에 있는 집안의 사당과의 공간적인 연관성을 통하여 시간적인 연속성을 꾀하였다. 1층 거실은 전면의 오래된 은행나무와 구릉의 광경들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건물이 앉혀지는 방향 자체를 조정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연결고리를 설정했다. 이곳이 황해 바다와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그 풍경을 상상하고 가늠할 수 있도록 거실 우측 상단부에는 좁고 긴 창문을, 2층에 있는 우측 방에는 적극적인 발코니 및 개구부를 설치하였다. 또한 건물 후면에 있는 소나무 숲의 푸른 기운들을 조망할 수 있도록 2층 거실 후면에 발코니를 설정하였는데, 2층 아이들 방과 1층 식당부분에서도 유사한 수법으로 내, 외부의 공간적 일체화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사랑채와 안채의 재해석작업
사랑채와 안채의 공간적 위치관계를 수직적으로 분할하고 이를 중첩되게 연결한 것은 고전적인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던 숨은 의도이다. '남성 위주의 공간'과 '여성 위주의 공간'으로만 구분하고 있었던 전통적인 사랑채와 안채의 의미를 '역사성을 유지하는 공간'과 '가족유대를 위한 공간'으로 재해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집에서는 김 박사 가문의 역사와 그 근거가 되는 사랑채를 건물 밑 부분에 설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가족간의 유대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제공하기 위하여 안채를 상층부에 만들게 되었다. 또한 가문의 역사성과 근본을 더욱 극명하게 마련하기 위하여, 사랑채와 기존의 주택과의 역사적인 상통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사랑채에 부속된 조그마한 마당과 대문과 출입문은 모두 기존 주택을 향하게 배치해 이를 수용하려 하였고, 사랑방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는 부속공간에는 이 집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도록 해 김 박사 집안의 상징적인 역사고리와 근본들을 잃지 않도록 하였다.
지상 1층에는 거실, 안방 그리고 식당과 부엌 등의 공간들이 있고, 2층에는 소규모 거실과 김 박사 내외가 기거할 수 있는 방과 아이들 방이 구성되어 있다. 재해석된 안채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도록 거실을 중심으로 이들 공간들을 집중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법적으로만 지하 1층인 사랑채는 주로 김 박사 부친이 기거할 수 있는 곳으로서 툇마루와 독립 마당을 별도로 두고 있으며, '안채'라고 할 수 있는 상부 2개 층은 내부와 외부공간과의 상호 연결을 통하여 공간의 단면적인 효과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하였다. 사용한 구조와 재료도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했는데, 지상 1, 2층에 사용된 목구조와는 달리 사랑채에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와 황토진흙마감을 통하여 공간의 절대적인 구분을 꾀하려고 하였다. 더욱이 사랑채의 구조체를 안채의 콘크리트 독립기초와 연결하여 구조적으로도 가문의 뿌리를 형상화하였다. 안채에 해당하는 지상 1층에는 전면부에 시간의 연속성을 만들고 있는 거실을 설정하여 가족간 유대관계의 중요성을 부각하였고, 지상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다소 과장된 형태의 주 계단을 통하여 그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중첩된 외부공간과 건물형태
이 집에는 여러 가지의 외부공간을 분절하여 각각의 공간적 특질을 주고자 하였다. 안마당의 고전적인 개념과 데크의 현대적인 외부공간을 계속 중첩하는 수법을 이용하였다. 이는 외부공간의 단면적인 공간효과를 최대한 얻기 위함으로, 매스의 위치를 결정하는 주요 역할을 하였다. 그늘진 처마, 종횡 방향으로 패턴을 만드는 목조벽면과 바닥 그리고 볼륨이 있는 곳과 편평한 매스들은 서로 대비되면서 외부공간의 특질을 만들고 있다. 자연적인 울타리와 고저차를 극복하기 위한 옹벽이 만들어낸 선들도 외부공간의 형식을 좌우하고 있다. 내가 처음 지형을 살펴보면서 지금의 대지를 선정하게 된 것은 건너편 구릉지에 있었던 고목에서부터 관찰한 결과였다. 그 아래서 대지를 바라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것은 '외부 공간과 건물의 형식'이었다. 건축물의 높이와 모양의 배경이 되고 있는 소나무 산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도 그렇거니와, 주변의 외부 환경과 집이 가져야 할 외부공간과의 관계 설정도 당시에 만들어졌던 것이다. 외부 환경과 각각의 내부 공간 사이를 중재할 서로 다른 외부 공간을 설정하는 일은 곧 매스의 형식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목조주택의 작업
김 박사는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였다. 부모님의 불편한 대형 농가주택을 개선하고자, 설계에 대한 요구조건도 부모님에 대한 것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우선적으로 김 박사는 목조주택을 선호하였고, 이에 나는 친환경소재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안방, 사랑방 등 중요한 부분은 내부 또는 외부를 황토마감과 닥나무껍질 한지를 이용하여 마감하는 등 화학적 독성이 없는 재료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사랑채의 긴 면 전체는 지면과 맞닿고 있어 방수가 우려되었기에, 지면과 맞닿는 옹벽 사이에 600㎜ 이상의 통기구를 두게 하여 지중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모든 집안의 덕트가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를 하였다.
내가 없는 현장에서도 건축가로서의 의도대로 마무리가 잘 되었던 것은 김 박사가 소개한 시공자 박종석 소장의 상당한 도움 덕이다. 착공 이후 내가 현장작업을 직접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여 1/50의 모형을 현장에 비치하도록 하였는데, 박종석 소장은 도면과 이 모형 등을 분석하여 전체적인 디자인 의도를 비교적 잘 파악하였다. 시공자로서 여러 불편들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 탈 없이 건축물을 완공하도록 해준 것에 대해 이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표한다.



도면













* 글 : 이안

[출처 : 건축도시연구정보센터(AURIC)]